"십자가"에서 6개의 글을 찾았습니다.

  1. 2016.02.15 원죄와 하나님의 아들의 권세.
  2. 2013.05.19 용서의 노래
  3. 2013.04.15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4. 2012.03.10 순교자
  5. 2012.01.03 더 주시는 하나님
  6. 2011.12.21 그의 치욕.

David. J. Noh: HOLY COMMUNITY :: make the kingdom of GOD on the network!!

원죄와 하나님의 아들의 권세.

창세기 2:15-25

15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16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18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19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라


원죄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사람을 창조하셨다.

그 첫 사람의 이름이 아담이다.


아담은 처음 부터 하나님의 아들로서 창조 되었다. 


누가복음 3:38

그 위는 에노스요 그 위는 셋이요 그 위는 아담이요 그 위는 하나님이시니라


아담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아버지셨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인 아담에게 모든 생물의 이름을 짓게 하는 권세를 주셨다.

이름을 짓는 다는 것은 그 것의 주인이라는 것을 의미 한다.


모든 인간이 부모님 혹은 누군가에게 이름이 지어져 부여되었듯이,

아담은 그에게 맡겨진 모든 생물들의 이름을 지을 수 있는 주인으로서의 권세가 있었다.


문제는 아담만 있던 에덴 동산에 많은 식물들과 동물들이 있었지만,

그 가운데 뱀도 있었다는 것이다.


에덴동산은 완전한 지상낙원 같지만, 뱀이 있었기에 완전하 장소가 아니었다. 단지 죄를 짓지 않은 아담은 죄의 영향으로 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다.


뱀의 이름을 누가 지었는가?

바로 아담이 지었다. 

그렇게 때문에 에덴동산에서 아담은 뱀을 다스리는 주인이었다.

뱀이 아무리 유혹을 해도 아담은 뱀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다.


아담은 혼자 독처하였고, 하나님은 그런 아담을 불쌍히 여겨서 하와를 만들어 아담에게 보내주셨다.


하와는 결국 아담의 한 부분이었으며,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해서 둘이 한몸을 이루게 되었다.


그러자 뱀은 하와를 유혹했다.

선악과를 먹어도 결코 죽지 않는다. 눈이 밝아져 하나님처럼 될 것이라 말했다.


디모데전서 2:14

아담이 속은 것이 아니고 여자가 속아 죄에 빠졌음이라


하와가 선악과를 먹었을 때, 

하와의 육체는 뱀의 말처럼 죽지 않았다.

그리고 눈이 밝아져 선과악을 알게 되었고, 부끄러움을 알게 되었다.

하와는 이것이 바로 하나님처럼 된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아담에게 선악과를 준 것이다.


누가 거짓말을 했던가?

하나님인가? 아니면 뱀인가?


하나님은 정녕 죽으리라 했지만, 하와는 죽지 않았으며,

뱀의 말처럼 눈이 밝아져 선과악을 알게 되었다.


하나님은 이런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은 상태에서 생명실과를 먹고 영생에 들어가는 것을 방지하고자, 에덴동산에서 쫓아 내신다.


이제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잃어버리고,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고 거짓의 아비 마귀에게 속한 자가 되었다.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는 어떤 것인가?


로마서 5: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이 아담의 하나님의 아들의 권세가 언제 회복 되었는가?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믿는 자에게 회복이 된 것이다.


에베소서 2:16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그래서 기독교인은 약한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부활하신 예수님의 능력을 힘입어,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에 다시 뱀의 사망권세를 다스릴 수 있는 권세와 능력이 있다.


누가복음 10:19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으니 너희를 해칠 자가 결코 없으리라


예수님의 제자라는 것은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이 있는 사람을 예수님의 제자라 한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기독교인들이, 이 하나님 아들의 권세를 믿지 않는다.

여전히 세상에 나가 상처받고, 고난 받으며 교회에 와서 눈물로 하소연 하는 어린아이 같은 신앙에 머물고 있다.


하나님은 기독교인에게, 또 교회에게 자라가라고 말씀하고 있다.

성장은 생명이 있는 자의 당연한 변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이 마치 사탄의 왕국인양, 겁먹고 자신감이 없어 원수와의 영적 전쟁에서 실패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우리는 육체를 지녔기에 실수 할 수 있다.

나약한 존재가 맞다.

그래서 하나님은 또다른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주셔서 우리 마음에 내주하게 하시며, 우리의 연약함을 친히 간구하며 도와주고 계신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적어도 하나님의 아들의 권세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뱀과 전갈을 밟는 권세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의 권세다.


뱀의 이름을 지어준 아담이 뱀을 다스렸던 것 처럼,

이제 사탄의 권세를 믿음의 권세로 다스려야 한다!


신앙생활이란 바로 사탄의 권세를 타파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것이다!!!


사탄에게 묶인 영혼을 구출하여 주님의 몸된 교회로 옮기는 것이다!!


이미 우리는 승리하였다!

하나님의 자녀라면 권세가 당연히 있다!!


더이상 자기연민과 두려움과 불안에 떨지 마라!


전신갑주를 취하고, 영적 전쟁 가운데 승리하자!!!


당당하게 세상을 정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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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의 노래

 

 

 

용서의 노래

 

하나님 저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저들이 하는 것을 알지못함이니이다

 

하나님 저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저들이 하는 것을 알지못함이니이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용서함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막힌 담을 허셨네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화목케 하셨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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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제목: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본문: 갈라디아서 2장 19-21절

19.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에 대하여 살려 함이라

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21.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십자가.


서울에는 수 많은 십자가가 있습니다. 밤이 되면 붉은 십자자가 서울의 밤하늘을 수놓습니다. 그 십자가는 주님의 몸된 교회가 세워져 있다는 증거입니다.


여러분 구원은 어떻게 해야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주시는 구원은 우리의 힘과 노력으로 받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우리의 힘과 노력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면, 지옥에 갈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어떻게든 살아 있는 동안에 구원의 요건을 만족시키면 되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육체적으로는 흠잡을데가 없는 사람입니다.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이요, 가말리엘 문하의 소생입니다. 로마의 시민권을 가진 사람입니다. 소위 배울만큼 배우고, 집안 좋고 배경이 좋은 그런 사람입니다. 거기에 히브리인이면서도 로마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오늘날로 치자면, 부모님은 대기업 회장님이고 서울대학을 나와 미국의 하버드대학에서 유학하고 미국시민권 까지 가지고 있는 그런 사람을 말합니다.

아마 상위 1%에 들어가는 그런 사람일 것입니다.

거기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열심도 있습니다. 스데반 집사님이 순교당하실 때 그 자리에서 돌던지는 자들의 옷을 지키고 있었던 자입니다. 교회를 핍박하고 성도들을 감옥에 가두는 그런 열심히 있었습니다.


사람의 눈에 보기에는 이만하면 구원을 받을 사람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죄인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 그런 까다로운 조건을 걸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단 한가지의 사실을 믿으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이 나의 죄를 담당하신 구원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구원자로 마음에 모시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오늘 죽어도 천국에 갈 수 있다는 믿음이 있습니까?

만약 이 질문에 마음이 불안하고 긴가민가 한다면, 심각하게 나 자신의 신앙을 점검해봐야 합니다.


예수님은 2000년 전에 예루살렘에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습니다.

이 십자가의 사건이 나의 사건이 되지 않으면 나와 예수님은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십자가의 사건을 경험해보셨습니까?

십자가를 통과하지 않고는 부활이 없습니다.

그것은 죽음을 경험하지 않고는 부활을 경험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천국에 갈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율법입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율법을 다 지킬수만 있다면 그는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로마서 7:9-10

전에 율법을 깨닫지 못했을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

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하나님께서는 죄인된 인간에게 율법을 주심으로 인해 죄가 악하며 율법이 선한 것이라는 것을 알려주셨습니다. 그런데 선한 율법을 사람이 지키지 못합니다. 99개를 잘 지키다가도 한 가지를 어깁니다. 이렇게 율법을 어김으로 인해 사람들은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하는 몽학선생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개역개정판에는 초등교사라고 나옵니다.


갈라디아서 3:24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율법은 이렇게 몽학선생이 도어 우리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로 인도합니다.

이것이 율법의 역할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세상에 어떤 사람이라도 그 율법을 전부 지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3:10-12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율법은 선한 것이지만, 율법을 다 지키면 구원을 받을 수 있지만, 사람이 죄인이기 때문에 죄를 범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죄를 지은 사람들에게 성막과 제사를 주심으로 그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좋으신 분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율법만 주시고 성막과 제사를 주시지 않았다면, 세상에 살아남을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이고, 구원받은 사람도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인 것입니다.


오늘 사도 바울은 그 율법에 매여 있던 것을 벗어버리고 십자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십자가는 예수님이 달리신 십자가입니다. 사도바울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만난 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 바울이 어떻게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다는 말입니까?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건은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게 나에게도 적용된다는 말입니다.


히브리서 13:8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것은 죄에 대하여 죽으신 것입니다.


로마서 6:10

그의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의 살으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으심이니


율법이 요구하는 인간의 모든 죄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이제 더 이상 내가 내 죄로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나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나의 모든 죄를 사하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무덤에서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신 것은 하나님에 대하여 살아나신 것입니다.

죄가 없는 예수님을 사망이 가두어 놓을 수 없습니다.


사도행전 2:24

하나님께서 그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다시 살리셨습니다. 왜냐면 예수님은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는 죄없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죄에 대하여 죽었고, 예수님과 함께 부활하여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입니다.


사도행전 13:39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


율법으로는 도저히 해결될 수 없었던 의롭다 하심을 받는 문제가 해결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 의롭다하심을 받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사도 바울은 자기가 사는 것은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담대히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번도 예수님을 만난 적이 없었던 사도 바울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다고 고백하고 있고, 한번도 예수님을 본적이 없었던 사도 바울이 예수님과 함께 산다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예수님이 어디에 계십니까?


예수님은 부활 승천하시고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그런 예수님께서 어떻게 사도 바울과 함께 살 수 있다는 말입니까?

사도 바울 안에 예수님께서 사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었습니까?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예수님께서 여러분 안에 살고 계십니까?


이 확신이 없는 사람은 아직 십자가를 경험하지 못한 분들입니다.

교회에 나와도 그럴 수 있습니다. 아직 율법에 매여 있을 수 있습니다. 율법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그 율법을 완벽하게 지킬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인간이 율법을 어기면서 스스로 죄인인 것을 드러냅니다.


로마서 7:11-13

11.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는지라

12. 이로 보건대 율법은 거룩하고 계명도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도다

13. 그런즉 선한 것이 내게 사망이 되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오직 죄가 죄로 드러나기 위하여 선한 그것으로 말미암아 나를 죽게 만들었으니 이는 계명으로 말미암아 죄로 심히 죄 되게 하려 함이라


여러분,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습니까?

죄에 대하여 죽었습니까?


예수님의 십자가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합니다.


그래서 오늘 나 같은 죄인도 구원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래서 누구나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기만 하면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누구나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고백하면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내 공로가 없기에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는 것입니다.

내가 값을 치르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선물이 무엇입니까? 값없이 받는 것이 선물아닙니까?

선물을 받고 값을 치룬다면 그것은 선물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하나님께서 죄인된 우리를 위해서 열어준 산 길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받은 구원을 굳게 붙잡고 놓치면 안됩니다.

마귀는 우는 사자와 같이 그 믿음을 떨어뜨리려고 달려들 것입니다.

믿음은 이렇게 지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은 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살고 있습니까?

여러분 안에 그리스도께서 함께 동행하고 있습니까?


요한1서 3:24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그의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


성령이 아니고서는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거하시는 줄을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령충만해야 합니다. 성령이 아니고서는 예수를 주가 고백할 수 없습니다.

성령이 아니고서는 예수님께서 내 안에 살 수 없습니다.


에베소서 5: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성령으로 충만해야 성령과 동행하며 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것이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신 것이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로마서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성령충만 함으로 매일매일을 산 제물로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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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사도행전 8:1
사울은 그가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순교자.

사울은 복음을 전하다가 죽는 것을 마땅히 여겼다.
자기의 목숨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은 것이 아니라,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무엇이 바울을 죽음도 두려워 하지 않는 사람으로 만들었나?

십자가.
예수님의 십자가에는 죽음을 이기는 능력이 있다.

누구나 한 번은 죽는다.
죽음은 피해 갈 수 없는 관문이다.

천국의 문이 될 수도 있고,
지옥의 문이 될 수도 있다.

바울은 왜 자기의 생명을 아끼지 않고, 죽는 것을 마땅히 여기면서 까지 복음을 전했나?? 

요일 3:16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예수님의 십자가를 보니,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한 것이기 때문이다.

형제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

얼마나 아름다운 인생인가??

나도 내 남은 인생을 다른 사람을 위하여 살고 싶다.

마태복음 16:25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더이상 나를 위하여 살지 않고, 예수님을 위하여 목숨을 잃는다 해도
천국의 영생을 얻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수많은 생명의 위험을 감수했다.
그러나 그런 위험이 바울을 어떻게 하지 못했다.

갈라디아서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바울은 더이상 자기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았다.

바울은 이미 십자가의 죽음을 경험했다.
바울이 사는 것이 아니라 바울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는 것이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산다는 것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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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vid. J. Noh: HOLY COMMUNITY :: make the kingdom of GOD on the network!!

더 주시는 하나님

열왕기상 3장 12-14절
12. 내가 네 말대로 하여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노니 네 앞에도 너와 같은 자가 없었거니와 네 뒤에도 너와 같은 자가 일어남이 없으리라
13. 내가 또 네가 구하지 아니한 부귀와 영광도 네게 주노니 네 평생에 왕들 중에 너와 같은 자가 없을 것이라


하나님은 풍성한 분입니다.

하나님은 부족함이 없는 분이시기에 인색함이 없습니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구하기 시작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기도의 응답의 때를 준비하십니다.
하나님은 마음을 감찰하시기 때문입니다.

기도에는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세상에 응답받지 못하는 기도는 없습니다.

솔로몬은 하나님께 일천번제를 드렸습니다.

1,000일 동안 번제를 드렸다는 말이 아니라,
한 번에 천마리의 소를 제물로 바쳤다는 것입니다.

그런 솔로몬의 마음이 하나님께 좋아보였습니다.

솔로몬이 하나님께 구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이 구하지 않은 것을 주셨습니다.

솔로몬은 지혜를 구했지만,
하나님께서는 부귀와 영광까지 덤으로 주었습니다.
 
기도.

성경은 무엇이든 구하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기도하는데 들어가는 것은 시간과 마음입니다.

마음이 있으면 자기 시간을 드려서 기도할 것입니다.
마음이 없으면 기도하지 않습니다.

마음이 있으면 물질을 드립니다.
마음이 없으며 물질을 드리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가진 소유의 전부를 드릴 수 있습니까?

가진 현금과 수표를, 주식과 채권을,
가진 아파트와 임야를, 건물을...
가지고 있는 보석과 금부치를,
하나님께 드릴 수 있습니까?


아니 아브라함처럼 자식을 드릴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독생자를 주셨는데...

누가 하나님께 자기의 전부를 드릴 수 있겠습니까?

...


하나님은 제물을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마음을 원하십니다. 사랑을 원하십니다.


누가복음 6:38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하나님께 드리는 자는

하나님께 받을 것입니다.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받을 것입니다.


당신은 하나님께 무엇을 드리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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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치욕.

히브리서 13:12-13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그런즉 우리도 그의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

그의 치욕.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의 보혈은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함입니다.
성도들은 예수님의 피로써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영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에서 죄인들과 함께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십자가 아래 군중들은 '너 자신을 구원하라' 외치며 비웃고 있습니다.
온몸은 채찍에 맞아 상처투성이고,
벌거벗겨진채로 십자가에 못박혀 죽어야했던 예수님.
우리를 대신하여 치욕을 당하셨습니다.

이제 예수님을 믿는 우리도 그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예수님에게 나아가야 할 때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다는 것이,
만사형통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보장된 만사형통을 버리고
그의 치욕에 참여하는 것을 보여줘야 할 때입니다.

베드로전서 4:13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이
우리의 즐거움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모든 것이 보장된 예루살렘 성에 머물지 말고,
영문 밖 갈보리 언덕으로 자기 십자가를 지고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는 것을 즐거워합시다!

영문 밖 갈보리 언덕위의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로 나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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