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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생활의 원리 (마태복음 19:21)

마태복음 19:21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글 저작권자: 성베드로 형제

우리가 주님의 거룩하심에 대하여 하나님으로 부터 계시를 받을 때,

우리는 속속들이 부패한 나 자신을 보게 되며 죄 있는 사람이 감히 가까이 할 수 없는 빛에 거하시는 주님의 빛 앞에 추잡하기 이를 때 없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내면적으로 발견되지 않는 진리를 위리가 외적으로 모을 때, 그것은 우리 자신을 움직일 수도 없고 남을 움직을 수도 없다.

 

지혜 - 혼적인 지혜가 있고 영적인 지혜가 있다.

혼적인 지혜는 사람의 이성에서 솟아나는 것이고, 영적인 지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에 공급하는 것이다.

 

Natural 자연인 에게는 이해와 지혜의 결핍은 교육으로 개선시킬 수 있으나, 교육이 타고난 재질을 변화시킬  수 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영적인 지혜는 믿음의 기도를 통하여(야 1:5) 구현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 속에 명심할 것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구속하시는 일에 있어서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으신다.(행 10:34)

하나님께서는 모든 죄인을 지혜가 있건, 어리석건 간에 모두 다 같은 위치에 놓으시고 이들에게 꼭같은 구원을 하사하신다.

 

지혜로운 사람의 전존재가 부패해 있듯이 어리석은 사람도 마찬가지다.

하나님 앞에서는 모두다 죄인인 것이다.

 

둘 다 영이 거듭나는 것이 필요하며, 거듭난 후에는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어리석은 사람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 잘 아는 것이 아니다.

 

사람의 타고난 지혜는 하나님이나 하나님의 진리를 아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말할 필요도 없이 지혜로운 사람은 함께 이야기 하기가 더 용이하고 이해도 더 빨리 한다.

그러나 이것은 지적인 세계에 한하는 것이지 직관적인 지식에는 전혀 상반되는 것이다.

 

구원 받은 후에는 지혜로운 사람이 영적인 성장을 하는데 있어서 어리석은 사람보다 우선적이라고 생가지 말라.

지혜로운 사람들이 더욱 신실하게 순종하지 않는 한, 이들의 뛰어난 지적인 이해는 직관적인 지식에 아무런 보템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사람의 타고난 것이 절대로 새사람의 원천(밑바탕)이 될 수는 없다.

 

영적인 성장은 "신실한 순종"의해서 측정되는 것이다.

타고난 재능은 비록 육신이 우선권을 내어줄 수 있어도 영적인 생활에는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영적인 경험이 있어서는 누구나 꼭같은 출발점에서 시작하고 누구나 꼭같은 결과를 얻는다.

 

날 때부터 지혜로운 사람으로 비롯하여 모든 거듭난 신자들을 따라서 누구나 영적인 깨달음(이해)를 구해야 한다.

영적인 깨달음 없이는 아무도 하나님과 정상적인 교제를 나눌 수 없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영적인 깨달음을 대신 할 수 없다.

 

골로새서 1:9-12

9 이로써 우리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10 주께 합당하게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 
11 그의 영광의 힘을 따라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
12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나님과 영교를 나누고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는 우선 우리의 양심이 보혈에 의하여 씻음을 받아야 한다.

신자의 양심이 씻음을 받을 때 그는 거듭나는 것이다.

 

성경 말씀에 의하면 피로 씻음(씻김)을 받는 것과 영이 중생하는 것은 동시에 일어난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을 섬길 수 있게 되기 전에 먼저 새생명을 받아 보혈로 양심을 정결케 함으로써 직관을 소생시켜야 한다.

 

양심은 우리가 하나님을 향하여 사람들에 대하여 깨끗한가 깨끗하지 못한가, 또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동이 하나님의 뜻에 따르는지 그리스도에게 배반하는 것이 있는지 없는지 증거해 준다.

 

그리스도인이 영적으로 진보함에 따라 나중에는 완전히 성려의 음성에 연합되기 때문이다.

성령은 따라서 신자의 양심을 통하여 신자에게 말씀하실 수 있다.

 

양심이 중요한 것이지만, 양심이 우리의 거룩함의 기준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명기해 두자.

 

양심과 지식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 예수는 우리의 거룩함에 기준인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 과의 교제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단 한 가지 조건은 우리가 꺼리낌(죄책) 없는 양심을 유지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양심의 지시하는 바 충분히 순종했다고 이제 "완전하다"고 스스로를 생각해서는 안된다.

 

선한 양심은 우리의 지식의 한도내에서 우리가 완전하다는 것을 확인해 줄 뿐이다.

우리는 즉각적인 목표에 도달했지만, 최종적인 목표에는 이르지 못했다.

 

양심은 중요하다. 우리의 거룩한 삶의 표준은 그리스도이지 양심이 아니다.

양심은 현재의 우리의 성화된 정도를 가늠하는 척도 역할을 한다.

 

만일 우리가 야심이 가르치느 바를 따라 산다면 우리는 우리가 현재 마땅히 와있어야 하는 장소에 까지 도달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것은 우리가 매인 영을 따라 행하는 일에 있어서 제일차적인 요인이다.

 

영을 따라 행하는데 있어서 성급함과 조급함은 금물이다.

 

혼적인 그리스도인들은 대개 감정적으로 기울거나 이성으로 기울어 진다.

 

영을 따라 사는 그리스도인은, 우리의 생활을 검토하고 시험해 보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성도들은 자신의 영적인 생활은 그럭저럭 어리석게 흘려 보내서는 안된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생각과 느낌이 하나님께로 나온 것인지 자신에게서 나온 것인지를 분별하기 위해 이를 세밀히 주의 깊이 검토하지 않으면 안된다.

 

때때로 사탄은 우리를 자극하여 우리의 영을 강퍅하게 만든다.

우리의 영은 굳어져서 양보할 줄도 모르고, 협소하고 이기적으로 변할 수도 있다.

이러한 영은 하나님과 함께 일할 수 없고,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도 없다.

이와 같이 하여 신자느 사람들에 대한 사랑을 버릴 것이며, 남에 대한 동정적이고 인정있고 부드러운 느낌을 모두 포기하게 된다.

 

또 종종 원수는 그리스도인을 유인하여 하나님의 자녀들 가운데 아주 흔한 징후로써 용서할 수 없는 영을 가지게 한다.

아마도 영적인 그리스도인이 넘어지느 것은 주로 여기에 원인이 있다고 할 것이다.

 

이와 같이 증오심과 비판심이 남의 흠을 찾아내는데 빠른 마음도 영적이 생활에 굉장한 타격을 준다.

 

만일 신자들이 이러한 태도가 자기 자신에게 나온 것이 아니고 원수에게서 기인된 것임을 분명히 알지 못한다면,

이들은 결고 증오심으로 부터 해방될 수가 없는 것이다.

 

어떤 때는 사탄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영을 협소하게 제한 시킨다.

사탄은 이들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경계선을 그어 스스로 남과 분리시키도록 만든다.

 

만일 누구라도 "몸으로서 교회(The Church as a body) 개념에 눈이 어두워 있다면, 그는 자기 영이 이미 협소해져 있다는 증거로써 자신을 조그만 "써클"에 내 맡긴 것이다.

그러나 신령한 사람은 하나님의 일들을 자기 자신의 것 "내 것"으로 간주하지 않고 전체 교회르 마음으로 사랑한다.

 

만일 우리의 여이 열려있다면, 생명의 강이 흘러 넘칠 것이며, 만일 우리의 영이 위축되어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고 자신이 쓰일 수 있는 가능성을 감소시키는 것이다.

 

모든 하나님의 자녀를 포용할 수 있을 만큼 대범하지 않는 영은 이미 악령들의 독을 먹은 것이다.

 

사탄은 종종 신자의 영 속에 교만성을 투입시켜 스스로 증오하게 생각하고 스스로 된척하는 마음을 유발시킨다.

 

사탄은 그리스도인들에 자신들이 뛰어난 사람들이라 생각하게 만든다.

 

이러한 영은 신자들을 넘어지게 만드는 중요 원인 가운데 하나다.

 

잠언 16:18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글 저작권자: 성베드로 형제

 

 

느낀점:

마치 워치만 니의 책을 읽는 것과 같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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