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그라운드.넷] 사실, 이 코너에서 할머니 이야기는 더 이상 하지 않으려고 했다.
맥도날드 할머니. 경향신문사 옆 건물 1층에 있는 맥도날드에서 밤을 지새우면서 붙은 별명이다. 그런데 기자가 두 차례에 걸쳐 할머니 이야기를 다룬 후, 할머니 신상에 변화가 생겼다. 더 이상 맥도날드에서 할머니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된 것이다. 어떻게 된 것일까.
종전 할머니의 하루를 보면 일정한 편이었다. 해가 뜨는 오전이면 할머니는 중구 충정로1가에 자리 잡은 문화일보사
스타벅스 커피숍으로 자리를 옮긴다. 스타벅스 2층에는 아예 할머니의 고정석이 있다. 할머니는 낮 시간 동안 이곳에서 석간 신문을 읽거나 성경을 읽는 한편, 점심시간을 전후로 해서는 교회에 출석한다. '목격자'들에 의하면 할머니가 맥도날드를 찾는 것은 밤 10시 전후. 그런데 그 할머니가 언제부터인지 맥도날드에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난 기사 이후 할머니를 뵐 기회가 꽤 많아졌다. 2~3주에 한 번씩은 경향신문사로 찾아오기도 한다. 물었다. 밤은 어디서 보내시느냐고. "요즘 맥도날드가 밤에는 너무 추워요. 그래서 종로3가에 있는
버거킹 건물에 가서 보내고 있습니다." 할머니의 답이다. 그러니까, 현재는 더 이상 맥도날드 할머니라는 별명이 맞지 않는 것이다.
'맥도날드 할머니'로 인터넷에서 알려진 권모 할머니. |백철 기자
할머니가 밤의 거처를 옮기게 된 배경에는 맥도날드사가 정부의 에너지 절약정책에 대한 호응으로 야간에 난방을 20도로 조절한 데도 원인이 있다. "맥도날드는 너무 추운데, 지금 새로 옮긴 데는 밤에도 후끈후끈해서 지내기가 더 나은 것 같다"는 것이 할머니의 말이다.
"중세의 수도사처럼 은둔하면서 살겠다"는 할머니의 생각에 최근 꽤 큰 변화가 생겼다. 거의 식사를 거르는 고행이다. 그렇다고 돈이 안 드는 것은 아니다. 특히 야간 거처를 종로3가로 옮기고 난 다음엔 이동하는 데 돈이 필요하다는 것이 할머니의 주장. 월 20만원씩 제공되던
새문안교회의 지원이 끊긴 지 벌써 1년 가까이 됐다. 그동안 할머니는 주변의 도움으로 필요한 돈을 근근이 충당하고 있다. 지난 기사를 본 한 누리꾼은 필자를 통해 할머니 계좌를 받아 5만원을 송금한 적도 있다.
앞에 언급한 것처럼 할머니도 '변화의 의지'를 천명했다. 며칠 전, 기자를 찾아온 할머니는 "신문사를 방문해 기자들이 일을 하는 것을 보니 나도 속세와 단절해 살기보다 일을 하고 싶다"고 의지(?)를 표명했다. 외교부에서 근무할 당시 영어와 불어는 능통했기 때문이나 번역일이나 특히 자신의 신앙경험에 대한 기고를 하고 싶어한다. 할머니와 인연이 닿는 매체가 있기를.
그런데 정작 말하고 싶은 것은 이것이다. 기자의 요청으로 할머니를 방문한 종로구청 사회복지과 관계자는 "현재 할머니의 주민등록이 말소된 상태이기 때문에 도움을 드리려고 해도 드릴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관청이 움직이는 것도 '맥도날드 할머니' 문제가 반짝 화제를 모았을 때 뿐이다.
일시적인 관심으로 끝낼 것이 아니라 이를테면 '맥도날드 할머니를 생각하는 사람들의 모임' 같은 지속적인 모임을 만드는 건 어떨까. 인터넷 포털에 카페를 개설해서 '할머니 문제', 더 나아가 이른바 '복지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우리 사회의 이웃들을 함께 생각해보면 어떨까 싶다. 관심이 있으신 분은 아래 기자의 이메일로 연락주시길 바란다.
< 정용인 주간경향 기자 inqbus@kyunghyang.com >